이미 수년 전에 쓴 글인데, 보충하여 또 게시해 본다.
필자는 지난 문재인정부 초기 최저임금 1만 원 논란시점에 그 최저임금 1만 원을 그렇게 급하게 시행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하면서, 그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노동시장개혁, 그 주요한 요인으로 임금체계개혁을 주문하고 있었다. (물론 그 주장은 필자가 최초였다. 그러나 관련하여 필자가 먼저 집필을 하지 않은 관계로 정치인 등 유력인들이 그 어젠다를 취하고 있었다.) 그 무렵 또 다른 주장도 했는데, 인기 자격증, 고소득 전문가 직군인, 의사나 변호사, 회계사 등을 예로 들며 우리 사회 직업군에 시장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의대정원 증원은 당연한 방향
의대정원을 늘리겠다하니, 또다시 의사집단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의사뿐 아니다. 지난 문재인정부시절에 공공의대를 신설하겠다던 계획도 있었는데, 일부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적 유불리의 정략적 행동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 소아적 행동들이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가?
의대정원은 늘리되 정확한 수를 결정하는 것보다 다른 방안이 필요하다.
의대정원 증원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정원을 수를 정하는 것에는 필자는 반대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수년 전에 필자는 여러 개의 글을 게시하고 있었다. 왜 시장, 즉 민간의 경제활동에 관료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가? 농민도 정부가 정하고, 편의점수도 정부가 정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 직업의 수는 얼마나 될까? 대략, 13,000여 개가량된다는 통계다. 그런데, 그 직업의 수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직업도 생성되고 소멸된다. 한 해에만 해도 수백 개씩 없어지고 새로 생겨나는 것이 직업이다. AI관련 직업들, 그리고 AI와 로봇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오래되고 익숙한 수많은 직업을 삭제시킬 가능성이 있다.
직업에 진입하는 수를 정부가 정하는 것은 공산주의 계획경제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효울성 측면에서도 매우 비효울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보수나 진보다 모두 시장주의가 무엇이고,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개념이 없었으니, 그 수마저 정부가 정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수지맞는 직업군에서는 그 수를 줄여달라거나 늘려달라고 상아탑에서는 스크럼을 짜고, (과거에는 대학의 일부 학과에서 정원을 늘려달라는 시위도 곧잘 벌어지고 있었다.) 사회에 나가서는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 우리의 천박하고 너절한 지본주의 시장경제의 역사요 현실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의사집단 등 돈벌이가 되는 면허소지자들이 소위 보수세력이라 하고, 그나마 논리력이 있다는 보수논객조차도 형편없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너절하게 실드를 쳐주고 있었다. 과거, 냉전시절에는 이념논쟁이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는 척도이었을 수는 있지만, 현대에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투명성과 불투명성, 공평과 편익의 기득권 등 자유와 평등을 고수하며 인간존엄을 지향해 가는 과정에서의 진보와 보수로 구별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다른 나라들과 의사의 수를 단순비교해서도 안되는 이유
다른 나라의 의사의 수와 대한민국의 의사의 수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불합리한 이유는, 대부분의 나라의 경우는 정부나 의사집단이 정하는 것이라기보다 시장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의사의 수는 시장에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처럼 의사협회가 그 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언제든지, 의지와 열정만 있으면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을 다양하게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의대에 진학해야만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고 전공의는 그 의사집단내에서도 차별을 두고 있는 실정이다.
민간의 직업을 정부가 계획해서는 안되는 이유
직업의 수, 일자리 수를 정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특별한 직업군에 편익이 생겨나고, 우리 사회는 하이어라키가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정도가 아주 극심하여, 세계최고 수준이다. 최저출산율, 다포세대의 희망 없는 사회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터지면, 최근의 학교에서의 교사의 문제나 문제학생을 다루는 방식, 또는 병원에서의 환자의 난동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얼치기 전문가들이 주장하듯 그들의 권익이 보호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개인적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스트레스가 그만큼 커져가고 있는 원인이 가장 크다는 의견이다.
언론 기사를 보니, 의사집단에서 결국 앞으로 의사의 수가 남아돈다 주장하는데, 그 근거로 최저 출산율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를 원인으로 들고 있다. 얼마나 독선과 아집에 빠진 황당한 주장인가? 인구감소는 왜 일어나는가? 변변한 직업, 소득원이 부족하고 자아실현의 기회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왜 소득원과 기회가 부족한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영역을 침범해 가는 자동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공존을 파괴하여 결국 사회를 나락으로 추락시키는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집단들이 있기때문에 대한민국의 인구감소는 단연 세계최고이듯 암담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신선 채소시장에서 가끔씩 그런 현상을 보게 된다. 어느 해에 배추값이 폭등했다면 그다음 해에는 배추가격이 폭락하는 현상을 말이다. 그러는 이유는 뭔가? 시장의 원리에 따르기 때문이다. 지난 코로나19 시절 초기 마스크가격은 매우 비쌌었다. 그러다 그 마스크가격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저렴해졌는데, 그 이유는 마스크를 만드는 기업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만일 마스크 수요기에 마스크를 만드는 공장들이 의사집단의 이기주의와 같은 이유로, 공장증설을 회피하거나 신규 진입을 막아 생산량이 더 많아지지 않았다면, 시민들은 몇 년을 비싼 가격으로도 부족한 마스크를 찾아 약국과 편의점에서 줄을 서는 불편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그 마스크공장의 상당수는 문을 닫았다.
염치없고, 저렴하게도 의사가 되는 과정까지의 비용과 노력을 말하지 말라. 그 마스크공장들의 공장설비도 결코 작은 비용이 아니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다. 그 직업군에 편익이 있으면, 그 직업군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자유롭게 터 놓아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시민들이 양질의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더 많은 청년들이 그 직업군에서 소득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사회적으로 위화감도 옅어지게 된다. 일자리는 시장의 원리, 경쟁의 원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그 수와 소득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독과점은 규제의 대상이다.
고소득 자격군의 담합과 카르텔은 왜 용인 되는가?
기업의 독과점은 규제와 통제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규제와 통제는 시장경제를 파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독과점 자체가 시장의 실패다. 의사집단 등 소수가 시장의 공급과 수요를 휘어잡고 그 가격을 통제하게 되면, 전체 사회의 후생이 감소하게 된다. 시민들로 하여금, 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박탈하거나, 더 저렴한 가격에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그 의료제도가 시민의 별도 세목인 건강보험료에 의한 재원이라면, 시민들의 목소리는 더 커져야 정상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기업의 독과점처럼,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방어벽을 치고 편익을 취하는 부조리는 제거되어야 한다.
수익이 나지 않은 진료과를 위해 특혜는 배제해야
산부인과, 소아과, 외과 등 비인기 진료의의 수익이 적다고 그들에 특혜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납득하기 어렵다. 의사의 수를 그 미용이나 다른 진료과와 유사할 정도로 늘리면 되는 일이다. 그것도 정부에서 계획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될 때까지 의사의 수가 자연증가하도록 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구비해 놓으면 될이다. 아무리 비급여로 떼돈을 버는 미용 관련병원이라 하더라도 그 수가 폭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것을 이용하는 시민의 후생이 증가하게 되고, 또 그래도 어느 정도 돈벌이가 되는 의사의 수도 체감하게 되어 산부인과나 외과 등 비인기 전문의의 수도 증가하게 된다. 그에 따라 당연히 우리 사회의 후생의 증가 국민의 삶의 질의 향상은 물론,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실업률이 감소하게 되고, 소득의 균등화가 실현된다.
지방의대에 가르칠 교수의사가 없어 전공의 정원을 반납한다는 기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경우의 수에는 의료수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개원의로 충분히 소득을 올릴 수 있으니 구태어 대학교수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의사의 수입의 상당 부분은 국민의 세금인 건보료다. 의료수가, 얼마나 명확하고 공정하게 관리되고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그 수가체계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물론, 과잉진료의 측면에서도 병원을 접해 본 시민들이라면, 분명할 말이 많을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는 창업과 폐업은 병가지상사를 뛰어넘는다. 자연스럽게 망하는 일은, 그 직업은 물론, 시장과 경제를 강건하게 할 수가 있다. 의사의 수가 너무 많아 그 지불한 비용에 비해 더 이상 초과이익이 없다면, 다른 직업군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평등도는 높아지고, 후생도 높아지며, 우리 경제의 펀더먼털도 커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출생률과 자살률도 덤으로 개선될 수 있다.
자료: 후생신문
직업 중 인원 정함을 필요로 하는 직업군도 있다.
우리 사회의 직업군의 일자리 수의 상당수를 국가에서 정하고 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직업의 수를 정할 수 있는 부분은 따로 있다. 공무원과 공기업등 시민의 조세와 준조세로 영위하는 직업군이다. 그들의 수는 법적으로 엄격하게 정하여 시민의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민간의 직업의 수나 그 직업 내의 인력의 수를 정부가 정하는 그 어떠한 행위도 시장의 실패를 가져오는 일이다.
사실, 필자는 문재인정부 초기 공약이었던, 공무원증원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필자가 명명한 공공부문비대화정책을 비판한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정부의 실패는 최근 필자가 지속적으로 게시하고 있는 금융정책과 부동산정책뿐만 아니라 그 공공부문 비대화정책 등도 있었다. 일자리 확충을 시장의 영역, 민간의 영역에서 채산성에 맞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관련하여 시장개혁은 전혀 하지 않고, 정부재정으로 공공부문에서 억지로 일자리를 만들려 했으니, 그 폐단은 명약관화한 일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 의료시장, 의사의 질의 향상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혈세의 공이다.
의료 수가에 있어 급여와 비급여의 정확한 홍보와 의사들의 폭리를 취하는 행위를 근절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사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폭리를 취하는 수익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공존을 위해 형평성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 수입의 정도를 시장의 균형에 맞춰갈 수 있도록 그 수가 자연스럽게 증가되고, 형평성 있는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 되도록 시장경제적 제도와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하며, 의사라는 직업이 돈벌이가 아니라 직업윤리를 준수하며,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진다는 스스로 자긍심과 인정을 받는 직업관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한 제대로된 인식을 갖는 우리 사회의 풍조가 절실하다. (필자는 최근에 치과를 다녀왔다. 예전에 때웠던 부분의 옆부분에 충치가 약간 발생했는데, 그 측면을 때우는, 진료비로 15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했다. 왜 그렇게 많이 나왔냐고 상세진료비를 요청하니, 이전에 레진으로 치료한 이의 측면부문을 때우는데, 레진이라 비급여란다... 0.5제곱센치도 안되는 그 치료의 비용으로 12만원이 나왔다. 피부과를 다녀온 시민들은 알것이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상당수 피부과병원에서,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시민들이 진료를 받으러간 피부과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많은 시민들이 알 수 있는 의료 급여와 비급여의 실상을 알리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직업과 교육개혁
그 직업에 종사하는 자의 수는 과정적으로 교육과정, 특히 대학입학정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 직업의 불평등도는 앞서 노동시장의 실패는 최저임금 때문이 아니라 임금체계가 더 큰 원인이라 주장했듯 그 고소득 자격군에 이미 제도와 시스템화된 특권과 편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교육개혁은 2차 개혁이라 주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직업군에 쌓아놓은 불필요하고 불평등을 조장하는 장애부터 없애고 교육개혁을 하던지 아니면 줄탁동시로 하는 개혁이 요구된다. 더 완벽한 시장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그 편익을 가져오는 특권들을 제거시키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는다면, 어설픈 개혁은, 시민의 비용과 스트레스만 증가되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과 같은 시장 실패도 당연하다.
현재의 6334의 학제를 개편하여 더 많은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업군은 경쟁력이 아닌 자유로운 과정으로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받쳐주는 제도로 거듭나야 한다. 적시 적소에 접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로서 그 응시자의 적성과 능력에 맞게 학과를 정하고, 또 의지와 열정으로 그 차별화된 수준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라 교유제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의견이다.
특정직업의 종사자들이 집단을 형성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는 편견이 없을 수 없다. 한국의 출산율과 자살률을 보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해 보인다. 평균노동자의 10배가 넘는(근로자의 최빈치 소득과 비교하면 20배가 넘고, 최저임금은 여전히 1만 원이 안된다.) 수입을 올리고 있는 의사가 다반사다. 그들이 그때가 되면, 아니 조만간에 그때가 온다는 견강부회.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사회는 짐승이 아니라 좀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 기후협약과 같이, 대의와 가치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의사집단 등 고소득자들의 수입도 결국에는 평범한 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탐욕과 오만을 버리고, 정의와 투명성, 그리고 인간존엄과 공존을 추구한다면, 우리 사회는 현재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dsr, 대환대출(대출 갈아타기)규제 등 금융규제가
왜 부적절한 정책이며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3oMe34v9I_s
GDP대비 70%, 3% 금리인상, LTV규제만으로도 붕괴된 일본,
좀비가 되어가는 대한민국은?
https://www.youtube.com/watch?v=up83cquYD84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원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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